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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문 1
    카테고리 없음 2022. 4. 4. 15:25

     

     

     

     A는 생각했다. 홍콩 바닥 더럽기야 모르는 사람이 없다지만, 오늘은 좀 심하다고. 깊어진 밤 만큼이나 지저분해진 술집 식탁 위에선 온갖 고함과 웃음과 유혹이 넘나들었다. 그리고 기다란 식탁의 끄트머리에선 남들 눈을 피해 꼴깝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만 사나운 줄 알았더니 손금도 사납네. 같은 얘긴가."

     

     주변놈들이 술과 담배에 쩔어있든 웃통을 벗고 있든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둘이 있었다. 허여멀건하고 짙은 피부색이 나란히 붉은 조명 아래 달아올랐다. 아니, 정말 조명인가? 

     

     "술자리에서 재수없는 소릴 하고 있어 새끼야. 넌 입 다물고 있어라."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오늘도 팔뚝에 금 갈 뻔 했다면서."

     "니가 퍽이나 남 걱정을 하겠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는데?"

     

     눈에 거슬리면 식탁 아래 의자 다리를 까든 정강이를 까든 가만 있지 않을 놈들이 요상하게 입으로만 싸우고 있었다. 한명은 뒷골목에서 모르는 놈이 없다는 장기 팔이, 한명은 비교적 최근에 여기저기서 이름이 들리는 사짜 변호사. 어딜봐도 어울리지 않는 놈들끼리 술 대작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꽤 오랫동안 둘 다 잔이 비워지지 않는다는 게 더 신기했다. 

     

     "술에 취한 놈들 중 반이 네 얘기 중이니까. 음, 그래도 생명선은 꽤 길구나, 너."

     

     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이청이 삿대질 하느라 들어져 있던 란티엔의 손을 덥썩 잡아 돌렸다. 자연스럽게 손금을 따라 엄지를 미끄러트리는 게 아주 수준급이었다. 어쭈. 저놈한테 저런 수작질을 했다간 대가리가 날아갈 게 뻔한데. 지 생명선은 짧은 놈이었나? 아니면 답지 않게 술에 취해서? 어느 쪽이었던 란티엔은 당장 녀석에게...

     

     "....길어? 얼마나? 생명선이 뭔데?"

     

     넘어갔다?

     

     "엄지를 가로지르는 이게 생명선, 여긴 지능선. 그리고... "

     "변호사란 놈이 이러고 있으니 존나 웃긴 거 알지."

     "앞에 사짜 붙이면 좀 어울리지 않나. 그래서 연애선 얘기 안 궁금해?"

     "당장 불어 사짜새끼야."

     

     얼씨구?

     

     슬슬 약에 취하는 놈들이 바닥과 의자에 늘어지기 시작하는 시간 한쪽에선 애새끼들도 졸업한 유치한 장난으로 손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손금인지 뭔지를 저렇게 오래 볼 수가 있나. 아니. 그보다 진짜 손금 보고 있는 거 맞아? 수작질이야 되도 않는 학구열이야? 

     

     홍콩에서 저런 작업질을 하는 놈은 처음봤다. 눈만 맞으면 어디든 입술을 부비고 아랫도리를 붙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러고 있으니 더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역시 저 이청이란 놈은 샌님이었던 걸까? 하지만 가끔 같은 싸움판에 나가면 펜이나 들 것 같은 손으로 굵은 쇠파이프를 휘둘러 망설임없이 머리통을 깨부수는 놈이 저놈이었다. 뒷골목이랑 안 어울리는 놈이라고 견제니 시비니 별 지랄맞은 상황을 다 겪고도 사지 멀쩡히 살아있는 독한 새끼가 그럴리가. 그럼 정말 란티엔 녀석의 손금이 궁금했다고? 그럼 저놈은 저걸 왜 받아줘?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노려보던 사이 이젠 손금 보는 것도 질렸는지 손톱을 보니 몸 상태가 어쩌구, 팔뚝은 멀쩡해도 손등엔 못 보던 상처가 어쩌구 하고 있었다. 평소였으면 어딜 건드리냐고 술집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을 놈이 얌전히 손을 내밀고 한껏 궁금하다는 듯이 상체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있다. 니네는 그대로 고개를 들면 코가 맞닿을 거리인 건 알고있냐?

     

     저런 거 안 보고 말지. A는 저 웃기지도 않는 광경에 눈을 떼기로 했다. 술자리에 왔으니 술이나 잔뜩 먹고 취하면 저런 건 기억에서 깔끔히 지워질 것이다. 여긴 조명이 어두우니까 집에 가는 길에 알려주겠다는, 저런 멍청한 말도 꼭! 지워지길 바라며 술병을 들었다. 

     

     역시 홍콩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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